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켄 덴노 (문단 편집) ==== '''우사 하치만구 신탁사건''' ==== 한편 이 무렵, 다자이후의 책임자였던 유게노 키요히토와 칸즈카사(主神) 나카토미노 스게노 아소마로(中臣習宜阿曾麻呂)가 >"도쿄를 황위에 앉히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 라는 [[우사 신궁|우사 하치만구]]의 신탁을 알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사 하치만의 법균(法均) 와케노 히로무시(和氣廣蟲)의 남동생인 기요마로(淸麻呂)가 칙사로서 우사 하치만구에 보내졌는데, 8월에 우사 하치만구에 참배하고 보물을 바친 뒤 선명의 문장을 읽으려는 기요마로 앞에, 신이 신관 카라시마노 스구리요소메(辛嶋勝與曾女)에게 내려 선명을 선포하기를 거부했다. 이에 의심을 품은 기요마로가 재차 스구리요소메에게 선명을 청했고, 스구리요소메가 다시 신에게 현신을 청하자 키가 3장(대략 9m)이나 되는 승려의 모습을 한 하치만신이 기요마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재차 선명을 내리기를 거절했다. 기요마로는 이를 >"하늘로부터 이어진 천황가의 자리는 반드시 미카도의 일족에게만 잇게 하라." 는 대신의 신탁으로 이해하고 이를 갖고 돌아가 아뢴 다음 >"앞서의 신탁은 허위" 라고 복명했다. 격노한 쇼토쿠 여제와 도쿄는 기요마로의 이름을 강제로 고치게 한 다음 이나바노곤노스케(因幡員外介)로 좌천시켰다가 다시 이름을 '와케베노 케가레마로'(別部穢麻呂)로 강제로 바꾸게 한 뒤 오스미(大隅)국에 유배해버렸다('''우사 하치만구 신탁사건'''). 비구니였던 기요마로의 누나 히로무시도 강제로 환속당해 '와케베노 히로무시메'(別部廣虫賣)로 이름이 고쳐진 채 빈고(備後)로 유배되었다. 10월 1일에 쇼토쿠 여제는 조를 내려 멋대로 황위를 구하려 하지 말 것이며, 차기 계승자는 여제 자신이 결정할 것임을 재차 표명했다. 그리고 10월부터 11월까지 한 달에 걸쳐 유이노미야에 행차해, 그 땅을 서경(西京)으로 삼는다는 취지를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